◈ 제 목 : 무너지는 가정의 식탁과 글루타민산 소다 중독증
우리 음식점에게 인공조미료 없이 영업을 하라고 주문한다면 이는 헐리우드 영화사에게 권총이 안나오는 영화를 만들라는 것 보다 더 어려울지 모른다. 인공조미료대신 천연조미료만을 쓰라고 한다면 많은
식당이 문을 닫아야 할 것이다. 그 비용도 문제거니와 인공조미료에
익숙해진 고객들의 입맛을 어떻게 맞출 수 있겠는가.
그 어렵던 50년대와 60년대, 우리나라 산업에서 먼저 자급체제를 이룬 것이 인공조미료이었고, 우리 공장의 해외 플랜트 진출 1호 역시
인도네시아에 인공조미료를 세운 미원공장이었다는 것도 나이든 사람들은 기억하고 있다.
인공조미료, 즉 글루타민산 소다는 일본인들의 발명품이지만 인당 소비량에서 한국이 세계 제일일는지 모른다. (우리는 화학비료와 시멘트의 인당 소비량에서도 금메달을 차지하고 있는 나라다)
인공조미료는 우리 일상음식에 아주 깊숙이 들어와 있다. 국물을 좋아하는 우리 국민의 식성 탓으로 모든 탕류와 국수류에는 이것이 듬뿍 쓰인다. 중국음식도 마찬가지다. 뿐만 아니라 인공조미료가 들어갈 것 같지 않은 식품들, 이를테면 각종 김치와 삶은 옥수수에도, 각종
스낵과자에도 글루타민산 소다는 듬뿍듬뿍 들어있다. 어린이와 학생들이 즐겨 먹는 음식일수록 인공조미료는 많이 들어간다. 떡볶이와
오뎅, 라면과 짜장면, 그리고 김밥과 스낵과자들이 그런 음식이다.
등심구이집에서도 손님들의 얕은 입맛을 돋구기 위해 고기에 인공조미료를 뿌려서 내오는 집도 있다. 그 집은 고기가 맛있는 집으로 소문이나 성업을 하고 있다. 장안에 유명하다는 냉면집이 많지만 대부분
그 국물은 인공조미료로 내고 있다. 설렁탕집도 마찬가지다.
결벽증이 심한 나의 친구 한 사람은 강원도 농민들이 옥수수를 삶으면서 인공조미료를 봉투째 뜯어서 퍼 붓는 것을 보고는 삶은 옥수수
사먹는 것을 포기했다고 고백했다. 그러나 그 친구가 다른 음식에 인공조미료가 들어가는 내막을 알았으면 먹지 못할 음식이 너무 많아
한국에서 살기를 포기해야 할지 모른다.
우리 전국민이 사실상 글루타민산 소다의 중독증 환자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 때문에 인공조미료를 안 쓰는 음식점은 영업을 하기가
어려울 지경이다. 거의 모든 사람이 인공조미료에 중독이 되어 이것이 안 들어간 음식은 맛이 없다고 기피를 당하는 것이다.
이쯤 되면 인공조미료가 우리 국민의 미각능력을 마비시켜버렸다고
단언을 해도 큰 무리가 없을 것이다. 여러 식품과 요리가 지닌 섬세한
맛을 감별하고 즐기는 능력을 현저하게 퇴보시킨 것은 분명하다.
인공조미료가 사람의 몸에 나쁜지 좋은지는 나도 깊이 아는 바가 없다. 인공조미료가 몸에 나쁘다는 보도를 접한 적이 아직은 없다. 그러나 미국에서는 70년대에 인공조미료가 한동안 언론에 오르내린 적이
있다. 중국요리를 먹고 나면 몸이 나른해지고 졸음이 오고 머리가 무거워지는 현상을 미국언론은 chinese food syndrome 이라고 불렀다.
원인을 밝혀보니 범인은 인공조미료이었다. 중국음식점이 한동안 영업에 타격을 입었음은 말할 것도 없다. 그렇다고 서슬이 퍼런 미국
FDA가 인공조미료의 사용을 금지시켰다는 보도는 과문 탓인지는 몰라도 아직 듣지 못했다.
chinese food syndrome은 우리도 일상 겪고 있는 일이다. 점심시간에 맛있는 탕류를 먹고나면 오후 근무시간에 몸이 나른해지고 눈꺼풀이 천근무게로 내려 누르는 통에 한참씩 고생을 한다. 잠과 다투는 것을 포기하고 아예 잠깐씩 눈을 붙이는 것을 습관화한 사람들도 많다.
이런 증상이 잦은 분들은 간밤의 피로와 이른 출근이 원인이라고 단정하지 말고 점심메뉴를 한번 의심해 볼 필요가 있다.
내가 아는 분 중 일찍이 미국으로 이민을 가서 그곳에서 오래 살다가
나이가 들어 한국에 돌아온 분이 있다. 이 분은 우리 음식점에 가서 절대로 탕이나 찌게를 먹지 않는다. 먹기만 하면 온몸이 나른해지고 졸음이 밀려와서 고생을 한다는 것이다. 아마도 인공조미료에 중독이
안된 탓이거나, 면역이 없는 탓일는지 모른다.
필자도 최근 이런 의심을 강력히 받쳐 주는 경험을 했다. 필자는 3년
전부터 시골생활을 하면서 인공조미료가 전혀 안 들어간 음식을 주로
먹으며 지냈다. 식당의 음식을 멀리한지 3년이 넘자 필자도 인공조미료 중독에서 해방이 되었거나 면역을 상실한 것 같다. 외식을 하면 속이 거북해지는 경우가 많다. 최근에는 동네에서 해물칼국수를 맛있게
한다는 집에 두 번 갔다가 두 번 모두 속이 거북하고 잠이 쏟아지는 경험을 했다. '맛있다'는 소문의 정체는 다소 진하게 넣은 인공조미료였다는 것이 나의 심증이다.
외식을 하는 전국민이 크고 작게 겪고있는 이 문제를 생각하면 여러
가지 걱정이 앞선다. 인공조미료가 가져오는 폐해는 chinese food
syndrome 만은 아니다. 인공조미료는 혀를 속여 과식을 유도함으로써 비만의 원인이 될 수도 있다. 반면 저소득층에게는 영양불균형을
일으킬 수 있다.
필자는 강의를 나가던 대학 앞에 있는 학생들이 잘 가는 식당에 갔다가 값이 싼 대신에 부실하기 짝이 없는 음식을 대하고 놀란 적이 있다.
음식 재료는 형편없는 것을 사용하고 인공조미료로 맛만 돋구어 놓았을 뿐이다. 이런 음식을 우리들의 귀한 자녀들이 먹고 있다는 것을 생각하며 대학에 다닐 때 자주 저녁을 먹고 들어오던 아들과 딸의 얼굴이 떠올랐다.
"식탁이 무너지면 가정이 무너진다." 교육부 장관을 지낸 영양학 교수의 말이다. 그러나 우리 주변에는 식탁이 무너진 가정이 너무 많다. 입시경쟁과 바쁜 직장생활 때문에 온 가족이 함께 식사하는 일은 서울하늘에서 별 보기 보다 어렵게 되었고, 식사시간도 불규칙해졌다. 아예 온 식구가 따로 따로 외식을 하고 밤늦게 만나는 경우도 일상화된
풍경이다. 주부가 부엌에 들어가기를 싫어하여 외식으로 때우는 집도
많다.
식탁이 무너지면 가족간의 대화도 없고, 친교도 없어지는 것이다. 사랑이 담긴 진정 좋은 음식을 접할 기회도 그 만큼 줄어든다. 다정한 가정의 식탁을 탐욕스런 상업주의의 식탁이 대신해 준다. 이것은 삶의
질의 문제이기도 하고 나아가서 사회적 문제이기도 한 것이다. 가족이 무너지면 그 구성원 모두가 불행해지고 나아가서 사회가 흔들리기
때문이다.
미국을 방문하면 과다한 비만증으로 고생하는 사람이 많은데 모두가
놀란다. 그 원인은 가정의 식탁이 무너진 데 있다. 독신자들과 저소득층일수록 그 피해자이다. 이들은 식사시간이 일정치 않고 아무 때나
식사를 한다. 식품을 들고 다니며 먹는 것도 이들의 특징이다. 이런 사회계층을 survivor/sustainer라고 명명한 학자도 있다.
그들은 식품은 수퍼마케트에서 사들고 가거나 takeout 을 사다 먹는다. 가정에서 만들던 식품을 산업에 맡기고, 시장경쟁을 시키니 모든
식품제조업체들이 소비자들의 혀를 홀리는데 치열한 경쟁을 하게되고, 이런 음식은 과식을 유도하게되는 것이다. 우리의 인공조미료 대신 미국식품은 지방질을 많이 쓴다.
반면 가정의 식탁이 지켜지고, 전통적인 식사법이 엄수되는 중류와
상류층에는 이런 비만증이 훨씬 덜하다고 한다. 아침에 오트밀을 먹고, 추수감사절에는 칠면조를 먹고 부모가 식탁의 주인노릇을 하는
가정이다. 전문가들은 이런 가정을 traditionalist 라고 분류한다. 가정과 가족간에 문제도 훨씬 적은 가정임은 두말할 필요도 없다.
문제는 우리 가정에 어느 틈에 survivor/sustainer형이 늘어나고 있다는 점이다. 보기에 중산층 자녀들 같은데 편의점에 라면과 김밥을 먹고있는 아이들을 보면 딱하다. 저들의 엄마는 지금 어디서 무얼 하고
있을까 궁금해진다. 젊은이들이 식품을 들고 다니며 먹는 상스러운
버릇도 늘고 있다. 미국의 survivor 계층들이 하는 짓이다.
우리사회의 '나 홀로 식탁', '따로따로 식탁'은 나날이 늘고 있다. 가족들이 장성했다면 별문제 없겠지만 자녀들이 어리다면 이래서는 안 된다. 일주일에 최소한 한번 이상 온식구가 모여 집에서 만든 온전한 음식을 함께 즐기는 것은 가정의 화목과 자녀의 교육을 위해 바람직한
일이다. 온식구가 모처럼 자리를 함께 한 주말에 외식을 하는 모습은
흔히 보는 풍경인데, 이것은 그리 권할 일이 못된다고 생각한다.
가정의 식탁을 되세우는일, 글루타민산 소다 중독증을 추방하는 일을
위해 조용한 사회운동이라도 펼쳐야 할 때인것 같다. 사실 이런 일이야말로 진정 중요한 국가적 과제가 아닌가.
우리가 추구하는 풍요는 무엇을 위한 것인가. 삶의 질이 떨어지고 가정과 사회가 흔들린다면 그 풍요가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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