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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주말농장과 독일의 주말농장(슈레버 가르텐)

해목교1 2006. 6. 21. 14:10
우리마을에는 서울사람들에게 농사지을 텃밭을 빌려주는 주말가족농장이 몇 군데 있다. 그 중 한 곳은 큰길가에 있어서 나는 나들이 할 때마다 그곳을 유심히 본다. 때로는 차를 세워놓고 한참 구경을 하기도 한다.

사실 '농장'이라고 이름을 붙인 것도 좀 과분해 보인다. 농가가 있는 것도 아니고 길가의 넓은 밭 한 모퉁이에 <팔당친환경가족농장>이라고 쓴 조그만 입간판이 세워져 있고, 농장과는 조금 떨어진 곳에 조그만 창고건물과 주차장이 있을 뿐이다. 이 밭을 가구 당 5평씩 분할하여 연간 얼마간의 돈을 받고 빌려주는 것이다.

그러나 이 농장은 주말이면 장터처럼 활기가 넘친다. 농장의 주인들이 텃밭을 가꾸러 오는 것이다. 주로 어린이들을 데리고 오는 젊은 부부가 많다. 때로 할아버지 할머니까지 일가족이 나들이를 나와 열심히 일하는 모습이 여간 정겹지 않다.

봄이면 이 텃밭에 고추, 상추, 토마토, 오이 등을 심는다. 5평의 공간에 무엇을 심느냐는 것은 주인의 개성에 속하는 문제지만, 고추는 모든 사람이 가장 즐겨 심는 작목인 듯하다. 이들은 주말마다 찾아와 물도 주고 잡초를 뽑으며 한나절을 보낸 후 돌아갈 때는 신선한 수확물을 한 보따리씩 거두어 간다.

날씨가 더워지고 장마철이 오면 봄채소들도 한물가고, 이들의 발길도 잠시 뜸해진다. 그러다 8월 중순쯤 되면 김장 배추와 무를 심느라 농장은 다시 활기가 돈다. 늦가을 배추와 무를 거두면서 이들의 한해 농사는 끝난다. 5평을 잘 가꾸면 서울의 5일가족 김장은 충분히 자급하고도 남는다.

이 농장은 팔당상수원보호구역 안에 있기 때문에 농약과 화학비료를 쓰기 않는 친환경 유기농법으로 농사를 짓는다. 부지런한 사람은 청정농법으로 키운 채소를 초여름부터 늦가을까지 거두어 갈 수 있는 것이다.

어른들은 어린이들에게 무언가 설명해주고 가르쳐 주느라 열심이다. 서울에서는 컴퓨터를 모르고 비디오 녹화예약도 잘 못하는 어른들이라 어린 것들의 존경을 못 받을지 모르나 텃밭에서는 장유유서의 옛 질서가 엄연하다. 농사를 아는 것은 어른들이고 아이들은 배워야 한다. 주말농장은 정보화사회에서 잃어버린 어른들의 권위가 다시 세워지는 공간이기도 하다.

어린것들이 고사리 손으로 풀을 뽑고 자기 몸집 만한 물통에 물을 담아 낑낑거리며 나르는 모습이 기특하다. 저 어린이들은 어른이 된 후에도 유년시절의 이 텃밭과 즐거운 가족 노동을 기억하리라. 인간과 환경, 가족과 노동에 대한 소중한 첫 레슨이 이루어진 그 현장의 기억을 지니는 한 그들은 남들과는 좀 다른 사회생활을 하게 되지 않을까.

도회에 살지만 흙에 대한 그리움을 안고 사는 사람들이나 자연과 가깝게 지내고자 하는 사람들을 위해 이런 농장이 늘고 있는 것은 반가운 일이다. 서울 주변에는 일손부족이나 도시에 사는 땅주인들의 무관심으로 노는 땅들이 의외로 많다. 농촌 인구의 고령화로 유휴지는 점점 더 늘어 날 것이다.

지방자치단체와 농협, 그리고 시민단체들이 협력하면 이런 사업을 더욱 확대해 나갈 수 있을 것이다. 이 사업은 당사자들 모두가 덕을 보는 사업이다. 땅을 빌려주는 농민은 소득에 보탬이 되어서 좋고, 땅을 빌려 농사를 짓는 사람은 청정채소를 가꾸고 거두는 기쁨을 누리고, 국가는 놀리는 땅이 줄어서 좋은 것이다.

그러나 아직은 초창기이기 때문인지 모든 것이 미흡하다. 어린이를 데리고 온 가족들이 농사일을 하다가 잠시 쉬려해도 마땅한 쉴 공간도 없다. 씻을 데도 먹을 데도 마땅치 않다. 부대 시설이 너무 열악하여 종일 고생만 하다 귀경 차파를 겁내 황황히 귀가 길에 오르는 것이 보기에 안쓰럽다.

이런 텃밭대여제도를 우리보다 한 세기 전에 도입한 나라의 사례를 타산지석으로 살펴 볼 필요가 있다. 바로 독일의 슈레버스 가르텐 제도이다.

'슈레버'는 1870년 라이프치히에서 텃밭대여제도를 창시한 외과의사의 이름이며 '가르텐'은 영어의 garden에 해당하는 말이다. 우리말로 옮기면 "슈레버 박사의 텃밭"쯤이 되겠다.

슈레버 박사는 정원을 가꾸는 일이 사람들의 육체적 정신적 건강의 증진에 도움이 된다는 신념을 갖고 노동자들에게 텃밭대여를 주선하는 사회운동을 펼친 사람이었다.

당시 독일은 유럽의 다른 나라보다 다소 늦게 산업혁명이 일어나 도시화 공업화가 빠른 속도로 진전되고 있었다. 우리의 1970년대가 그러하듯, 100년던 독일의 산업화도 대대적인 인구이동을 가져왔다. 한때 농사를 짓고 살던 사람들이 공장 노동자로 일하기 위하여 도시로 이주하게 되었다. 그러나 거대한 공장건물 사이에 허술하게 지은 노동자들의 아파트는 집만 있을 뿐 나무 한 그루 풀 한 포기 보기 어려운 삭막한 환경이었다. 많은 노동자들이 공장지대의 나쁜 공기와 신선식품의 부족으로 건강을 잃어갔다.

슈레버 박사는 이처럼 열악한 환경에서 사는 근로자들이 도시 변두리의 공유지를 빌려 텃밭을 가꿀 수 있도록 발벗고 나섰다. 근로자들에게 태양과 산소가 풍족한 녹색의 휴식공간을 주고, 부족한 청정채소를 자급케 할 목적이었다.

이 제도는 점차 독일 전역으로 확산되었고, 오늘날까지 존속되고 있다. 그 생산량도 무시하지 못할 수준이라고 한다. 독일이 두 차례의 세계대전을 치를 때 이 작은 텃밭들은 독일이 생산하는 야채와 과일의 10%까지 생산한 기록을 가지고 있다.

오늘날 "슈레버 박사의 텃밭"은 식량공급의 목적보다는 휴식공간과 취미생활의 공간으로 구실하고 있다. 현재 독일에는 슈레버 텃밭을 가꾸는 사람들의 조직이 있다. "독일 정원애호가 협회"다. 독일이 통일되기 전 그 회원 수는 50만 명이나 되었는데, 통일된 이후 더욱 늘었을 것이다.

규칙과 질서를 좋아하는 독일인답게 슈레버 텃밭을 규제하는 규칙과 조례는 매우 엄격하다. 슈레버 정원은 법에 의하여 필지 당 400평방미터(130평)를 넘을 수 없게 되어 있다. 보통 50-100필지가 모여서 하나의 조합단위를 구성한다. 조합은 비영리 사단법인으로 엄격한 공법상의 관리대상이 된다.

표준이 되는 슈레버 텃밭의 모습은 이렇다. 우선 넓은 땅을 100평 정도씩 직사각형으로 반듯하게 구획을 하여 조합원들에게 한 필지씩 임대해 준다. 임대를 받은 회원은 자기 땅 주변에 울타리를 두르고 그 안의 땅을 쪼개어 통로와 밭과 화단을 만든다. 농기구를 보관하고 차를 마시며 쉴 수 있는 이동식 목조 움막도 설치한다. 어른이 허리를 굽히고 들어갈 수 있는 이 목조 움막은 수퍼마케트에서도 팔고 있다. 비가 많은 고장인지라 이 움막이 없으면 어려움이 많을 것이다. 각 텃밭에는 대개 수도와 전기가 연결되어 있다.

멀리서 보면 영락없는 난쟁이들이 사는 마을 모습이다. 그러나 모든 것이 독일인답게 빈틈없이 깔끔하게 손질되어 있으며, 이웃에게 절대로 피해를 주지 않는다. 날씨가 따듯한 계절이면 웃옷을 벗은 반라의 남자들이 일광욕을 즐겨가며 밭일을 한다.

독일인 국민성이 철저해서인지 땅과 작물을 다루는 솜씨가 모두 전문 농사꾼처럼 능숙해 보인다. 한뙈기의 땅은 대체로 한가족에 속하며, 직장이 있는 사람은 주로 주말에 나와 정원을 가꾸지만 은퇴한 노인들은 매일 나오기도 한다.

여름은 이 미니 농원의 절정기이다. 위도가 높은 독일은 여름에는 밤10시에도 밖에서 신문을 읽을 수 있을 정도로 낮이 길다. 이런 때는 직장을 파한 후 이곳에 와서 저녁시간을 보내기도 한다.

가볍게 맥주와 차를 마시고, 때로는 숯불을 피워놓고 소시지를 구워가며 온 가족이 파티를 하는 모습도 종종 볼 수 있다.

우리 나라 보통사람들의 주말텃밭을 단박에 이런 수준으로 올리기는 힘들겠지만, 이런 방향으로 노력해 나가야 할 것이다. 진정 국민을 행복하게 해줄 뜻이 있는 정부라면 130년 전 의사 한 명이 해 낸 일을 못할 이유가 없을 것이다.

출처 : 상봉파 김진석님글